'집착증' 남편에게 매맞던 싱글맘, '세계1위 부자' 키웠다 [백수전의 '테슬람이 간다']

입력 2022-06-18 07:00   수정 2022-06-18 11:49


“안녕, 서울! 초대해줘서 고마워요”

지난 12일 한 70대 여성의 트윗이 국내 테슬라 팬덤 커뮤니티를 술렁이게 했습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어머니인 메이 머스크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서울에서 지난 16일 열린 ‘글로벌 우먼 리더십 포럼’에 연설자로 참석했습니다. 발 빠른 ‘테슬람’ 트위터 사용자들은 “축 일론 사장 어머님 방한”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등의 멘션과 함께 메이의 방한 소식을 리트윗했습니다. 국내 언론도 앞다퉈 그의 동정을 보도했습니다.

메이가 단순히 ‘세계 1위 부자의 어머니’이기만 했다면 이렇게 화제가 되진 않았을 겁니다. 그는 74세의 나이가 무색하게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디올과 돌체앤가바나 등 명품 브랜드의 모델이었고, 영양학 석사 학위를 받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캐나다, 미국에서 영양사로 일했습니다. 두 권의 책을 쓴 작가이자 성공리에 세 아이를 키웠습니다. 겉으로 보면 일도 가정도 남부러운 것 없는 ‘슈퍼 맘’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의 화려한 경력 뒤엔 아픔의 과거가 있었습니다.

탐험가 집안에서 자라다
메이는 1948년 캐나다 서스캐처원의 주도(州都)인 리자이나에서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친이자 머스크의 외할아버지인 조슈아 홀드먼은 바람 같은 남자였습니다. 가족들을 비행기에 태우고 북미 곳곳을 여행하고 다녔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아무 연고도 없는 남아공으로 이주해 아프리카 사막과 오지를 탐험했습니다. 메이를 비롯한 아이들은 철저히 자유방임으로 키웠습니다. 이러한 기질과 교육 방식은 머스크가(家)에도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메이는 15세 때부터 모델 일을 시작했습니다. 금발에 키가 크고 쾌활한 표정의 소녀는 금방 사람들의 눈에 띄었습니다. 처음엔 소박했습니다. 지역 백화점 패션쇼에 섰고 화보를 찍었습니다. “일흔 살이 될 때까지 모델 일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때는 돈을 벌어서 대학에 가고 싶었습니다”(메이 머스크 《여자는 계획을 세운다》) 대학에서 영양학을 공부하던 그는 스물한 살에 친구의 추천으로 지역 미인대회에 나갔고 우승합니다. 이를 계기로 미스 남아공 대회에 출전해 결선까지 나갔습니다. 이 경력은 그의 평생에 걸친 모델 커리어를 든든히 뒷받침했습니다.

툭하면 때린 남편... 지옥 같던 결혼생활
메이는 남아공 북동부의 대도시 프리토리아에서 성장했습니다. 10대 시절 메이에겐 같은 동네에 살던 에롤 머스크란 남자친구가 있었습니다. 그와 수년간 사귀고 헤어짐을 반복하다 1970년 결혼합니다. 에롤은 집착증이 있는 남자였습니다. 여러 차례의 청혼에도 메이가 거절하자 그녀의 부모님에게까지 찾아가 결혼을 졸랐습니다. 당시 남아공에선 남자들이 여자의 아버지에게 결혼 승낙을 받아야 했습니다. (남아공은 아파르트헤이트(흑인 인종차별 정책)로 인한 흑백 갈등이 심각했고, 인권운동이 막 태동하던 시기였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지만, 여성 인권이란 인식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에롤은 유럽 신혼 여행길부터 아내를 손찌검했습니다. “친절과 배려가 넘치는 집안”에서 자란 메이에겐 큰 충격이었습니다. 모든 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을 땐 이미 첫째 일론을 임신하는 중이었습니다. 친정 식구들에게 남편이 때린 사실을 하소연할까 했지만 ‘너무 창피해’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남아공 법률은 ‘합당한 사유가 없는’ 이혼을 금지했습니다. 그 사유에 ‘여자를 학대하는 남자’는 해당 사항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남자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습니다.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1971년 6월 28일 첫째 일론이 태어났습니다. 이후 3년 사이 둘째 아들 킴벌, 여동생 토스카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에롤은 기계 엔지니어로 일했고 사업이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집에 차가 6대나 있었고 휴가철엔 호주나 홍콩, 뉴욕으로 해외 여행을 다녔습니다. 집안 살림은 풍족했지만, 메이에 대한 신체적 폭력은 멈추질 않았습니다. 에롤은 “이혼하면 면도날로 얼굴을 그어버리겠다” “아이들 다리에 총을 쏘겠다”는 등의 막말과 폭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메이는 결국 ‘회복 불가능한 혼인의 파탄’ 법률이 통과된 해인 1979년 이혼소송을 냅니다. 별거를 시작하자 에롤은 칼까지 들고 쫓아왔습니다. 메이는 법원에서 판사에게 말했습니다. “남편의 돈은 필요 없어요. 아이들만 있으면 됩니다” 남편과 이혼 후 메이는 아이 셋 딸린 싱글맘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습니다. 남아공 동부의 항구도시 더반에서 영양사로 개업했고 모델 일도 다시 시작했습니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세 가족이 입에 풀칠할 수준은 됐습니다.

그러나 가족이 해체된 지 2년 만에 일론은 아버지와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당시 아버지 곁엔 아무도 없어서 슬프고 외로워 보였어요”(에슐리 반스 《일론 머스크, 미래의 설계자》) 메이에겐 충격이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론은 자기 생각이 확고한 아이였어요” 혹자는 “일론이 부자 아버지를 선택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당시 소년 일론은 손주를 가엾게 여겼던 친할머니와 매우 가까웠고 그 영향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둘째 아들 킴벌마저 형을 따라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천재' 아들을 키운다는 것
메이는 부모님이 자신을 기른 방식으로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아기처럼 대하지도 꾸짖지도 않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무슨 공부를 해야 하는지 정해주지도 않았습니다. “응석받이로 키우면 안 됩니다. 안전한 상황이라면 아이들 스스로 책임지게 내버려 두세요”(메이 머스크 《여자는 계획을 세운다》) 대신 그는 아이들 각자의 관심 분야를 좇아가도록 도왔습니다.

첫째 일론은 어렸을 때부터 책벌레였습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다 읽고 몽땅 외웠습니다. 하루에 10시간씩 책을 보기도 했습니다. 한번 생각에 잠기면 무아지경에 빠진 듯 누가 불러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아이와 조금 다르다고는 생각했지만, 괴짜 정도로 이해했어요” 여동생 토스카는 오빠를 가리켜 “모르는 게 있으면 우리 집 천재에게 물어봐”라고 농담삼아 말하곤 했습니다.


일론은 컴퓨터광이기도 했습니다. 열 살 때 처음으로 PC를 가졌고 사흘 밤을 꼬박 새워서 베이식 프로그램을 마스터합니다. 12세엔 ‘블래스터’라는 컴퓨터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보통의 엄마였다면 게임에만 정신이 팔렸다고 나무랄 법도 했습니다. 메이는 오히려 아들에게 그 게임을 컴퓨터 잡지에 내보라고 권했고 상금으로 남아공 돈 500랜드(당시 미화로 약 750달러 가치)를 받았습니다. 그는 본인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회상합니다.

“1983년 일론에게 컴퓨터를 사줬고, 컴퓨터는 아직도 아주, 아주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그땐 그 아이가 장차 무엇을 할지 몰랐습니다. 테슬라나 스페이스X가 나올지는 상상도 못 했어요. 돌이켜보니 우리 아이들이 성공한 것은 어린 시절 좋아했던 것에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어떤 것에 흥미를 보이면 격려해주세요”

→ 2편에 계속

※메이 머스크의 방한으로 지난주 예고했던 <‘악마 보스’ 머스크의 인재상> 2편은 연기합니다. <혁신가의 어머니>편 이후에 올리겠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테슬람이 간다’는
2020년대 ‘모빌리티 혁명’을 이끌어갈 테슬라의 뒷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최고의 ‘비저너리 CEO’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도 큰 탐구 대상입니다. 국내외 테슬라 유튜버 및 트위터 사용자들의 소식과 이슈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매주 기사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백수전 기자 jerr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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